순간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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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날으는 화살 역설에서 주제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순간과 운동간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순간에서 운동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의 주석가들의 해석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순간과 운동의 관계는 오늘날 '순간속도'라는 개념이 일반화 되면서 더욱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라 할 것이다.

이글은 우선 순간에서의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과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Barnes나 Owen의 입장의 차이가, 화살 역설의 해결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후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순간에서의 운동'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이것이 제논의 역설에 대한 헤겔의 입장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2

날으는 화살 역설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 자신의 크기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은 정지해 있다.
② 화살은 날고 있는 각 '순간'에 단지 자기 자신의 크기의 공간만을 차지할 수 있다.
③ⓐ (기간으로서의)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 따라서 화살이 한 기간의 각 '순간'에 정지해[또는 운동중에] 있으면 그 '기간' 전체에서도 정지해[또는 운동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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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날고 있는 화살은 전체 시간 동안 정지해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의 논증에 대해서 두가지 방식의 비판을 가한다.

ㄱ. 첫째는, 전제 ③의 ⓐ를 거부하는 것이고,
ㄴ. 또 다른 하나는 전제 ①을 거부하는 것이다(Physics 239b1).

ㄱ.
전제 ③의 ⓐ, 즉 시간이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Owen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즉 (기간으로서의) 시간은 연속적이어서 순간으로 쪼개질 수 없다는 것이며, 이의 귀결로서, 기간은 순간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순간은 어떤 크기도 가지고 있지 않는데 반해
, 기간 크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며 따라서 순간을 더한다고 기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시간은 불가분적인 순간들(indivisible instants)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Phisics 239b5)

그러나 문제는 ③의 ⓐ를 부정한다고 해서 ⓑ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가 부정된다고 해서 반드시 ⓑ도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를 긍정하는 다른 방식이 바로 Owen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Owen도 아리스토테레스가 주장하는 시간은 순간의 단순한 합(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여전히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한순간 t에서의 운동은 그 순간 t가 포함되어 있는 기간 T 동안의 운동과 "체계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Owen에 따르면 "기간 T에 걸쳐 a가 운동하고 있다"라는 말과 "T의 어떤 순간 t에 a가 움직이고 있다"라는 말은 서로 의미는 다르지만 양자는 동치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어느 한쪽이 참이면 마찬가지로 다른 한 쪽도 참이다. 합의 관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관계에 의해서 ③의 ⓑ가 긍정되고 그리하여 만약 다른 전제도 참이라면 위의 논증은 타당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Owen이 주장한 위의 동치관계는 그 속에 이미 순간에서의 운동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반박은 이제 전제 ①을 부정하는 것에로 진행한다.

ㄴ.
아리스토텔레스가 ①을 부정하는 까닭은 바로 순간에서는 운동도 정지도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운동은 다른 순간에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고
, 정지는 다른 순간에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간에서는 운동도 정지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위의 논증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이 되지 못할 수가 있다. 그 이유는 Barnes가 주장하는 것처럼 전제 ①을 약간만 손질하면 되기 때문이다.

Barnes는 전제 ①을 "자신의 크기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정지해 있다"에서 "어떤 것이 자신의 크기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운동 중에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로 바꿈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논증은 여전히 성립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Barnes는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정반대의 견해를 내세우고 이를 통해서 바뀐 전제 ①을 거부한다. Barnes에 따르면 순간에서도 운동과 정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Barnes는 일상언어를 분석하여 "버스가 내 차를 들이받던 그 '순간' 내 차는 시속 30마일로 '달리고 있었다'."라는 말이 의미있게 쓰이고 있음을 보이면서 순간에서의 운동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Barnes는, Owen이 주장하고 있는 동치주장과 똑 같은 동치주장( 어떤 기간 T에 대해서 순간 t가 T 속에 있고 a가 기간 T 동안 움직일때 오직 그때에만 a는 순간 t에서 움직이고 있다.)을 내세움으로써, 순간에서의 운동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4

이상에서 우리는 Barnes나 Owen 모두 순간에서 운동이 가능함을 보임으로써 날으는 화살 역설이 역설이 아님을 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순간에서의 운동'이란 이 말이 지니는 의미란 무엇일까? 순간에서의 운동이란 개념이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순간에서의 운동이 올바른 것이라는 것이 그것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것은 어떻게 해서 순간과 운동이 이렇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순간에서도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운동이 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간 속에서도 살아남는 운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Barnes나 Owen이 순간 속에서의 운동을 살려내기 위해서 드는 근거가 일상언어적 유의미성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논의 역설은 바로 순간과 기간 사이의 양적인 관계 - 그것도 바로 그 사이에 무한성이 개입하게 되는 양적인 관계 - 에 대한 두가지 대등한 입장의 대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설의 문제를 양적인 관계에 대한 해명을 통하지 않고 일상언어적 용법을 통해서 해명하려고 하는 시도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아마 한가지 합당한 대답을 대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양적인 분석보다는 개념의 일상언어적인 용법의 분석이 위의 역설의 문제나 무한성의 문제의 해명을 위해서 우선하며 보다 근본적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일 것이다. 즉 무한성의 문제는 순간과 기간 사이의 양적인 관계에서 파생될지 모르지만, 이 양적인 관계 자체는 순간이라는 개념과 기간이라는 개념간의 개념적 관계에서 파생된다는 것이다.

순간에서의 운동을 단지 미분이나 극한에서의 순간변화율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설명은 순간을 기간을 통해서 설명하려는 시도이거나 아니면 무한 분할이나 극한의 최종점의 성격이 무엇이냐고 하는 무한성과 관련된 문제를 보다 정밀하게 표현한 것일 뿐, '순간에서의 운동'이란 개념이 형성되는 근본토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무한성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취하고서 그에 따라 운동을 나름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도 나름대로 실질적인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한 개념이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지 못한만큼 이러한 정의도 근본적인 토대 위에 서 있는 정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순간에서의 운동이 가능하다면, 무한소로서의 '지금', '여기'에서의 운동도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운동은 곧 장소와 시간의 변화가 없는 운동이다. 이는 보통 운동을 장소의 이동으로 보는 우리의 일상적 표상과 어긋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인가? 운동이란 무엇이기에 그러한가? 이처럼 순간에서의 운동이 의미가 있다면 여기서 우리는 운동의 성격이 시공간적인 양적 변화를 통해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양적 규정을 벗어난 '순간'이나 '여기'에서 운동이 규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동을 규정하는 양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의 규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질적이고 개념적인 규정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규정은 어떻게 찾아질 수 있을까?

순간에서의 운동에 대한 Barnes와 Owen의 동치규정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들에 따르면,

어떤 일정한 기간 T에 대해서 순간 t가 T에 속하고 a가 T 동안에 운동할때 오직 그때에만 a는 t에서 운동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순간에서의 운동'과 '기간에서의 운동'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우리는 순간은 크기를 가지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순간을 아무리 모아봐야 기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을 살펴 보았고 그 타당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이런 가정 하에서라면 순간 중의 운동을 아무리 모아도 일정기간의 운동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운동과 관련하여 순간과 기간이 관계맺는 것은 단순한 더하기나 결합과 같은 양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다. 이러한 더하기나 결합의 관계에서는 순간과 기간의 서로 다른 성격(하나는 양적이고 하나는 양적이지 않다는)때문에 무한의 문제로 소급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위의 동치 규정은 기간과 순간이 상호 함축의 관계를 가지는 개념적 관계이다. 즉 순간에서의 운동 자체가 이미 기간에서의 운동을 전제하며, 기간에서의 운동 자체도 이미 순간에서의 운동을 전제한다. 순간과 기간은 운동과 관련하여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밀접한 연관의 성격은 무엇인가?

5

여기서 우리는 순간과 연속적인 시간, 점과 공간 간의 관계에 대한 헤겔의 주석을 의미있게 도입할 수 있다. 순간의 연속적인 시간 내에서의 정립, 점의 공간 내에서의 정립 등은 우리의 표상(Vorstellung)을 통해서는 아무런 모순 없이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순간이나 점들은 시간이나 공간을 이루는 본질적인 계기 중의 한 측면으로서, 독자성, 절대적인 자기 자신의 구분(das absolute Sichunterscheiden), 즉 불연속성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순간이 시간이 없이 존립할 수 없고 점이 공간없이 존립할 수 없는 것처럼 순간이나 점의 불연속성은 연속성(Kontinunität), 즉 자기 자신과의 동등성(Sichselbstgleichheit)없이 존립할 수 없다. 순간(그리고 점)과 연속성은 양(대표적인 것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규정하는 상호 모순적인, 따라서 서로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본질적인 두 계기이다.

그러나 이 두 계기는 표상 속에서는 각각 양을 규정하는 서로 무관심한(gleichgültig) 두 계기로서 등장한다. 이렇게 서로 무관심한 것으로 정립된 각각의 계기가 자신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모순을 드러낸 것이 바로 제논의 역설이다. 제논의 4개의 역설 중 첫번째 두개인 '이분법'과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양이 가지는 연속적인 계기 즉 하나의 기간을 구성하는 계기로부터 출발하여, 거기로부터, 자신과 모순적인, 무한히 많은 점들로의 분할이 결과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나머지 두개인 '날으는 화살'과 '스타디움'은 불연속적인 계기, 즉 독립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거기로부터, 자신과 모순적인,자기자신과의 동등성 즉 연속성 내지 기간의 성립이 불가결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헤겔의 지적은 결국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이들의 본질인 운동을 단순히 감각적인 표상을 통해서 파악하지 말고 사유를 통해서 이들을 파악하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유를 통한 이해, 내지 개념을 통한 이해란 헤겔에 따르면 곧 모순 속에서의 진상의 파악이다. 헤겔은 제논과 마찬가지로 운동이 가지는 모순적 성격을 인정한다. 그러나 제논은 운동이 모순을 낳기에 운동의 존재를 부정해 버리는데 반해, 헤겔은 모순 속에서 운동의 참된 모습을 지적해내고 있다.

헤겔에 따르면 위의 동치관계에서 제시된 순간과 기간의 밀접한 연관이란 모순적 관계라는 것이다. 모순만큼 밀접한 관계란 없다. 모순은 모순되는 양항의 동시 인정과 동시에 동시 부정이다. 따라서 모순 속에서는 양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같이 있어야 한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다. 바로 이것이 모순이 지니는 긍정적 성격이다. 위에서 기간과 순간이 보여주는 밀접한 관계가 바로 이러한 모순이 지니는 성격,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도 있어야 하는 관계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즉 헤겔식으로 이해하고 그 근거를 해명하자면, 위의 시간과 순간이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들의 양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순간과 기간, 점과 길이등이 서로 모순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결국 순간에서의 운동이 가능한 것은 순간과 모순되는 기간과의 관계 속에서 운동이 파악되기 때문이며 이는 헤겔이 말하는 모순속에서의 진상의 파악이 여기서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