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치켜야 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1881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 1951년 영국 캠브릿지에서 운명)

이 글은 방송대 대학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말들이 모두 제대로 된 말일까? 제대로 되었는지 아닌지를 눈으로 봐서 알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것이 주어-술어의 문법적 구조를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어-술어의 구조를 갖추고서 우리가 쓰는 말들은 모두 제대로 된 말일까? 다음의 두 문장을 보자.

① 사람은 죽는다.
②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①은 사람이 '어떠한지'에 대해, ②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두 문장에 대해 우리는 두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첫째는 두 문장 중 하나에 대해서는 참, 거짓을 말할 수 있지만 다른 하나에 대해서는 참,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보는 것이고 둘째는 둘 다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에 대해 모종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각각 한 세대씩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위의 두 양립불가능한 언어철학적 입장이 모두 비트겐쉬타인이라는 한 천재적인 철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강철왕의 아들로 태어난 비트겐쉬타인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항공공학을 배우러 왔다가 금세기 영미 철학계의 대부인 러셀이 화이트헤드와 공동 저작한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를 읽고 수학의 기초에 관한 철학적 문제에 매료되어 공학을 때려 치우고 논리학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비트겐쉬타인은 아마 이 책에서, 자명한 모든 수학적 진리를 하나의 논리로 밑바탕에서부터 철저히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비트겐쉬타인은 그의 초기 대표 저서인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에서 언어는 본질적으로 세계를 모사하는 그림과 같은 것이라고 천명한다. 언어의 논리적 구조는 세계의 구조와 일대일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우리 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철저히 분석하게 된다면 이러한 구조적 동형성은 쉽게 보여질 수 있다. 따라서 세계의 그림이 될 수 없는 말들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말들이므로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이런 말에 대해서 우리는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볼때 자연과학적 명제(①이 그 예) 이외의 다른 여타의 윤리적(②가 그 예), 미학적, 종교적 명제들은 모두 세계를 모사하는 명제들이 아니며 따라서 말할 수 없는 명제들이 된다. 이런 것들은 말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져야 할 것들인 것이다.

그런데 또하나 말할 수 없는 명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논리철학논구}에 쓰여진 철학적 명제 모두이다. 이 말들은 모두 세계와 언어의 논리적 구조 사이의 대응 관계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논리적 명제들로 세계에서 이 말들에 대응하는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말을 이해한 사람들은 그가 한 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버려야 할 사다리처럼 무의미한(unsinnig) 것임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한 뒤 비트겐쉬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자신의 할일이 모두 끝났음을 확신하고 철학계를 홀연히 떠난다.

그렇지만 그의 이론은 과학적 지식의 기초를 찾으려는 논리 경험주의 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과학적 지식이 경험에 기초하기 때문에 참된 지식일 수 있다고 믿고 경험과 언어가 어떻게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찾기 위해 과학적 언어에 숨겨진 논리적 구조를 분석해내려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비트겐쉬타인의 세계와 언어의 그림 관계에서 자신들이 주장했던 경험과 논리적으로 구조화된 언어와의 대응의 짝을 발견했던 것이다.

러셀이 철학,수학 분야 이외에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벌인데 반해, 비트겐쉬타인은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고 홀로 고립된 생활을 즐긴 괴퍅한 인물이었다. 철학계를 떠나 수도원 정원수, 국민학교 선생 등의 일과 누이의 집을 설계해주는 등 다른 일을 하던 그는 자신의 초기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철학계로 돌아온다. 철학에서 여전히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돌아온 그는 그의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 1953)에서 자신의 초기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가 쓰는 말들이 칼로 자라내듯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깔끔하게 구분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부추겼던 초기의 '그림 이론'이란 것이 언어가 오직 사태를 지시하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는 편협한 시각에 기인한 것임을 깨닫고 그는 세계를 모사하는 기능 이외에 언어가 가진 다른 중요한 기능들(의사소통, 감정표현, 명령, 교육, 등등)에 주목한다. 이는 인간의 삶의 양식(form of life) 및 그 속에서의 언어의 사용과 동떨어져서 언어의 본성이 이해될 수는 없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언어란 삶의 복잡한 국면만큼이나 다양한 국면을 가지는 것이지 어느 하나 딱 꼬집어 이야기 할 수 있는 어떤 본질을 가지는 것이 아니게 된다. 언어란 말하자면 하나의 놀이(game)이다. 그리고 놀이의 규칙은 다양하다.

이제 ②는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으로 추방되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언어놀이 속에서 나름의 쓰임을 가지고 있다. 이제 철학자가 할 일은 우리의 언어가 암묵적으로 따르고 있는 규칙에 민감해져서 혹시 잘못 유추해서 규칙에 맞지 않게 말을 사용하지 않는지를 감시하는 일이 된다. 우리들은 자주, 유리병에 빠져 유리에 머리를 박는 파리처럼, 언어적 질병에 걸려 해결할 수 없는 난문제와 헛된 씨름을 한다. 이 질병의 치료가 이제 철학자 본연의 임무가 된다. 그는 그가 영국 캠브릿지의 어느 외딴 오두막에서 홀로 세상을 뜰때까지 평생을 이 임무에 종사한다. 말이 말을 만드는 말 많은 세상에서 침묵해야할 것에 침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