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진보하는가?
- 토마스 쿤(Kuhn)(1922-) -

이 글은 방송대 대학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오늘날 과학은 하나의 신앙이 되고 있다. 과학적인 방법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는 신뢰의 정도는 '과학적'이라는 말이 언제 사용되고 있는지를 반성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과학에 대해 느끼는 일상적인 반감조차도 그 밑바닥에는 '과학적 지식의 막강한 위력'에 대한 기대의 좌절이나 아니면 잘못 쓰일지 모르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학적 지식과 과학적 방법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제공하며 또 이전의 성과를 누적적으로 축적시키고, 또 계속해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추가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부분들을 설명하게 될까?

한때 과학에 대한 이런 믿음이 20세기 초를 풍미한 적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성장한 논리실증주의 또는 논리 경험주의라고 하는 사조가 그것이다. 과학의 눈부신 성과에 주목한 그들 과학자 출신 철학자들에게는 과학적 방법이 진리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과학적 방법과 이론의 고유하고도 본질적인 성격을 분석해 내는 일이 곧 진리의 본질을 밝혀내는 일이 되었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이 세계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경험과 관찰에 기초하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제 이들이 할 일은 과학의 용어들 중에서 경험과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관찰용어(observation term)로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해 내는 일이 된다. 경험을 매개로 해서 세계와 이론이 합치되는 지점만 분명히 확보된다면 그 나머지는 엄격한 논리적 법칙에 따라 하나의 통일적인 이론체계를 구성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들의 야망이었다. 이 야망이 달성된다면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이 분명한 기준에 의해 판정되고 그와 함께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의 구분도 분명해질 터였다. 그리고 여러 과학 이론들은 하나의 기준에 의해 그 성패가 판가름 나고 성공적인 이론들은 계속적으로 세계에 대한 참된 인식을 축적시키고 확장시켜 나갈 터였다.

그러나 이런 야망은 여러 측면에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그들의 야심찬 계획의 토대였던 관찰 용어와 관찰적이지 않은 용어(이론용어)의 구분에 대한 확신이 의심을 받게 된다. 경험과 관계하는 관찰용어라는 것이 다른 여타의 용어들로부터 구분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여러 증거들과 더불어 주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둘의 구분은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를 판가름 해 줄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꿈은 원대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꿈을 세차게 흔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철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일어났는데 바로 그것이 쿤이 1962년에 발표한 {과학 혁명의 구조}이다. 토마스 S. 쿤은 1922년 7월 18일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1943년 물리학 전공으로 하버드 대학 최우수 졸업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949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일찌기 대학원 시절부터 그는 과학적 연구와 그 발전 과정의 통태적 특성에 관심을 갖고 과학사 연구에 몰두해 왔었다. 바로 이 과학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결과가 논리실증주의의 야망에 또 한번의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과학 발전의 역사를 검토해 볼때 오늘날의 과학이란 것이 수세기에 걸친 과학자들의 연구 업적의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과학자 집단도 일관된 과학관을 지닌 단일 집단이 아니었음을 '패러다임'(Paradigm),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쿤이 앞의 책에서 "21개 정도의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기본적 의미에서 패러다임은 "일련의 과학적 행위를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공해주는 특정의 과학적 성과"를 말한다. 이는 한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 법칙, 방법, 지식, 가치, 전통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새로 들어오는 과학자를 교육, 훈련시키는 틀이며 또 새로운 연구를 수행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침이다. 한 학문이 하나의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때 이때의 연구는 '정상과학'의 형태를 띤다. 이 시기는 새로운 영역으로 연구를 확장시키거나 연구결과를 보다 정밀하게 하는 등의 지속적인 발전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이러한 정상과학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변칙사례'(anormaly)들, 즉 패러다임에 기초한 우리의 이해에서는 전혀 기대되지 않았는데도 관찰되는 세계에 관한 사실들이다. 이러한 변칙사례들은 대개는 패러다임을 약간 수정보완함으로써 해결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변칙사례들이 해결되지 않은채 남고 또 쌓여서 패러다임의 기본적 접근방식 자체가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고 문제를 삼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 시기가 바로 '위기'(crisis)의 시기이다. 이 때 과학자들은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들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이 위기가 옛 패러다임을 새 패러다임으로 대치시킴으로써 해결되면 바로 '과학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새 패러다임은 새로운 형태의 정상과학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과정이 되풀이 된다. 이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과학혁명(1) ->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는 정상과학의 전통 수립 -> 변칙사례들의 출현과 정상과학의 위기 발생 -> 과학혁명(2) -> ..............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바로 과학자 집단이 하나의 패러다임을 포기하고 다른 패러다임을 선호하는 과정이다. 쿤은 패러다임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불가통약성) 어느 패러다임이 더 좋은 패러다임인지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어떤 독자적인 증거나 방법론적인 규칙도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는 과학혁명을 오리-토끼 그림에서 오리를 보다가 갑자기 토끼를 보는 것과 같은 것 또는 종교적 개종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쿤이 정치의 영역에서나 쓰이던 '혁명'이라는 개념을 과학에 도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떤 합리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나 방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처럼 예측할 수 없이, 이전의 체제를 붕괴시키듯이 이전의 패러다임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또 이전의 패러다임이 금지하는 방향으로 일어나는 단절의 과정인 것이다.

이제 진리와 합리성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던 과학의 높은 콧대는 한풀 꺽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학혁명을 한갖 심리학적이고 사회적인 원인들의 결과로 봄으로써 과학은 이제 합리성 개념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종전의 합리성 개념, 특히 논리 실증주의의 야심찬 합리성 개념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과학이 발전하는지 아닌지 또 어떤 과학 이론이 세계를 참되게 보여주는 이론인지를 판정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우리 인간은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쿤의 과학사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물음은 유효하다.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할 것인가? 지금도 우리는 과학이 마련해준 엄청난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 문명의 편리함은 가면 갈수록 더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그만큼 과학도 발전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전의 기준을 찾는 문제는 생각만큼 쉽고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 문화인지를 판정하는 것이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