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세가지 입장에 대한 헤겔의 비판

 

I. 서 론

철학을 흔히 만학의 여왕이라고 흔히들 부른다.그런데 철학을 만학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철학이 모든 학을 포괄한다는 의미 뿐 아니라, 철학이 모든 학의 절대적 정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여기서 절대적 정초란 곧 홀로서 다른 것에 의존함이 없이 스스로를 스스로 정초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철학이 다른 학문에 의해 정초된다고 한다면 철학은 만학의 여왕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당화나 증명이 모든 학문이 수행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이러한 정당화나 증명 자체의 정당화란 학문에 대한 학문으로서 철학이 수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화에 대한 정당화는 스스로를 스스로가 정당화 시키는 수 이외에는 달리 다른 다른 것에 의존함이 없이는 가능한 방법이 없다.

철학은 정당화를 해야 하는 동시에, 그 자신의 정당화 행위 자체도 정당화 행위자체를 통해 수행하지 않을 수 없는 여왕으로서의 책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여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본것이 바로 헤겔의 체계로서만 가능한 그의 철학인 것이다.

인식론에서는 정당화에 대한 이론이 많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모두 참된 인식의 정당화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언어로 이루어지는 그 정당화의 논리적 과정 자체에 대한 정당화에는 관심를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정당화는 자신의 정당화를 이미 전제하거나 다른 무엇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자기 정초가 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한계를 직시한 헤겔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자기 자신속에 이미 자신을 포함하고 있는 사고 규정들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사고 규정을 찾아 나가는 작업도 또한 사고(denken)가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매개로 해서 스스로를 찾아나가는 것이며,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장 충만된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찾아나감의 과정이 바로 그의 논리학이라 하겠다.

순수한 이념 즉 사고라고 하는 추상적인 요소 속에 있는 이념의 학, 그리고 사고에 대해 사고하는 학으로서의 그의 논리학을 출발함에 있어서, 스스로를 자신과 관련시키지(sich auf sich beziehend) 못하는 그전의 철학은 비판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를 자신과 관계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철학은 자신과 타자를 분리시키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분리는 그래서 모순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또한 그러한 분리가 극복되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직접적 통일만으로는 완성된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 정초와 체계로서의 철학은 단순한 직접적 통일로서는 "어둠속의 까만 소"에 불과할 뿐이다. 그에 따르면 "말할 수 없는 것은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참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이에 덧붙여서 자기자신을 자기자신과 매개시키는(sich mit sich vermittelend) 것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이러한 매개 속에서만 그의 절대적 관념론이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철학은 따라서 주-객의 대립 또는 보편-특수의 대립속에서, 자신속에서 대립되는 객관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헤겔의 비판은 대립적 계기를 내포하고 있는 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비판에로 집중하게 된다. 다음에서 그 구체적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II. 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세가지 입장에 대한 헤겔의 비판

1.헤겔의 기본입장

논리학이란 사고라고 하는 추상적 요소속에 있는 이념의 학이며, 사고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우선 서론적 작업으로 사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사고를 사고해 보아야 한다.

첫째로 사고는 하나의 정신적 활동이나 능력으로 나타난다.

활동성으로서의 이 사고는 활동적인 보편적인 것이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행위와 산출된 것(결과)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하나의 현존하는 주체로서의 사고하는 자로 파악될 때, '나(Ich)'가 된다. 이러한 '나'로서의 사고가 사고를 통해 파악된다고 한다면, 이러한 '나'란 칸트처럼 모든 나의 표상들에 수반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모든 표상, 감각, 모든 상황으로부터 추상된 순수 사고의 대상으로서의 '나'란 "그 자체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다.

둘째로, 이러한 사고는 또한 대상과의 관계속에서 활동하는 것, 즉 <어떤 것에 대한 지향적 사고(Nachdenken)>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의 산물로서의 보편적인 것들은 본질적이고, 내적이고, 참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세째로, 감각,직관,관념속에 있는 내용들에 있어서 어떤 것이 지향적 사고를 통해서 변형된다. 따라서 (경험적) <대상>의 <참된> 본성이 이러한 변형을 매개로 해서 의식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네째로, 모든 참된 본성은 지향적 사고를 통해 나타나고 또한 이러한 사고는 나의 활동성이므로, 모든 참된 본성은 사고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정신의 산물이요,나의 단적으로 추상적인 보편성에 따르는 나의(Meiner) 산물이요, 나의 <자유>의 산물이다.

사고에 대한 이러한 규정들에서 볼때 사고의 결과물로서의 사유(Gedanke)는 객관적인 사유(objektive Gedanken)이다. 왜 객관적인가 하면, 모든 대상들(사물들:사고의 대상으로서는 사물의 본질들)은, 지향적 사고를 통해서 변형되어, 의식속에서만 사고되므로, 이 사유(Gedanke)란 사물의 본질성에 대한 사유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사유(Gedanke)의 주관성과 대상의 객관성이라는 대립을 초월하여 사유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그의 의도가 드러난다. 헤겔은 객관적 사유(Gedanke)를 진리와 철학의 절대적 목표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사유는 앞에서 보았다시피 하나의 대립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사고규정이 대립 속에 있는 한 그것은 유한한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절대적 진리일 수 없다. 이러한 사고란 단지 지성(Verstand)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고규정의 유한성은 두가지 방식으로, 즉 그 규정은 주관적인 것일 뿐이고 따라서 객체와의 영속적 대립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유한성과, 그 사고규정이 제한된 내용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뿐아니라 더더우기 절대자와의 대립 속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유한성으로 파악될 수 있다. 헤겔은 위에서 제시된 사고의 네가지 규정을 기준으로 해서 유한성 속에 있는 사고규정들을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다. 다음에서 이러한 유한성 속에 있는, 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세가지 입장를 살펴보기로 하자.

2. 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첫번째 입장 : 종래의 형이상학

이 첫째 태도는 자기 자신 속의 사고와 자기 자신에 대한 사고에서의 어떤 대립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향적 사고(Nachdenken)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입장은 대상에 곧바로 다가가서, 감각과 직관의 내용을 자신으로부터 사유(Gedanke)의 내용으로 재생산하여, 이것을 진리라고 하여 만족한다. 이것은 칸트 이전의 형이상학의 입장들로서, 사고규정을 사물의 근본규정으로 보고, 또 존재하는 것이 사고된다고 하는 것에 의해서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철학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입장은, 다음의 세가지 한계를 지닌다. 1) 그 사고규정이 추상성에서 그 자체로 타당하다고 보고 또 그 사고규정들이 참된 것의 술어가 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2) 왜냐하면 이들의 형이상학의 대상들인 神, 영혼, 세계등등은 하나의 총체성(Totalität)으로, 이것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나 반성적으로나 이성(Vernunft)에 속하는 것이요, 그 자체 구체적 보편에 속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 술어화가 가능한 지성규정을 부과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자를 제한된 술어들로 파악하려고 하게 되고 그리하여 절대자의 제한된 측면만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을 진리라고 만족하게 된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진리가 주어와 술어의 상관관계, 즉 하나의 판단에서 문제되기 때문에 3) 이 입장은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가 거짓이 아닐 수 없다고 하는 독단론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형이상학은 따라서 구체적이고 사변적인 것을 표현하기에는 부적당한 일면적인 것이다. 구체적인 것으로서의 개념이나 모든 규정일반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에 있어서 다른 규정들과의 통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이상학의 무모순성의 원리는 구체적인 것을 포착하는 데는 부적당한 것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은 크게 존재론, 이성적 심리학, 우주론,그리고 자연적 혹은 이성적 신학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특히 절대자를 다루는 신학에서는 神이라는 표상에 어떠한 술어가 적합한가 하는 문제가 초점이 되고 따라서 여기서는 긍정과 부정이 절대적으로 대립되는 추상적인 개념 규정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객관적인 사고 규정들 상호간의 대립이 해소되지 않은채 남아 있는 것이다.

3.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두번째 입장 : 경험론과 비판철학

가. 경험론

앞에서 제시된 지성적 사고란 보편성에서 특수한 것이나 내용성에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추상적인 이론만이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추상성을 극복하고 구체적 내용을 되살리면서 확고한 발판을 확보하려는 최초의 노력이 바로 경험론이다. 이는 진리를 사고 자체에서 구하지 않고 경험(Erfahrung)에서, 즉 외적,내적 현재로부터 끌어내는 입장이다.

이러한 경험론은 한편으로는 논증에 있어서 우선 경험에서 유래한 내용, 즉 표상(Vorstellung)을 그 보증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형이상학과 공통점이 있다. 물론 경험론도 지각이나 직관의 내용들을 보편적 표상들이나 명제, 법칙등의 형식으로 고양시킨다. 경험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표상들이나 명제등과 같은 보편적 규정이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나 타당성을 가질 수 없고 오직 지각(Wahrnehmung)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부터만 그 의미나 타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론에서의 인식의 확고한 지반은, 의식이 지각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직접적인 현재와 확실성을 가진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론을 철저히 밀고 나간다면, 초감성적인 것의 인식과 규정성은 부정될 수 밖에 없고 사유(Gedanke)에는 오직 귀납적이고 형식적인 보편성과 동일성(Identität)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경험론에 대해서 경험이란 두가지 요소 즉 질료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반성이 일어났다. 여기서 경험의 형식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보편성과 필연성은 그러나 아무리 많은 다수를 합쳐도 경험적으로는 보여 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론에 따르면 그러한 보편성과 필연성은 단지 아무 근거도 없는 것, 주관적 우연, 단순한 습관의 결과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된다. 바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나타난 것이 칸트의 비판철학이다.

나. 비판철학

칸트의 철학과 이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고찰하기 위해서 헤겔의 유명한 귀절인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란 말을 우선 고찰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이것은 칸트와 헤겔의 대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실(Wirklichkeit)과 이성(Vernunft)은 칸트에 있어서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이성이란 불가피한 가상을 만드는 존재에 불과했다. 따라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일 수 없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일 수 없었다. 그러나 헤겔의 이러한 귀절은 칸트의 그러한 대립을 완전히 부정해버리고 이를 동일시 한다. 이는 곧 칸트와는 달리 현실적인 것을 이성에서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헤겔에 있어서의 이성은 무엇인가? 어떠한 성격을 가진 이성인가? 헤겔은 논리적인 것(das Logische)을 형식상 세가지 측면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의 이성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논리적인 것(das Logische)을, a)추상적인 혹은 지성적인 것, b)변증법적 혹은 부정적-이성적인 것, c)사변적 혹은 긍정적-이성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논리학의 세 부분이 아니라, 모든 각각의 논리적으로-실질적인 것(Logisch-Reellen),즉 모든 각각의 개념들 또는 모든 참된 것의 계기(Momente)를 이루는 것들이다. 즉 각각의 개념은 모두 이 세가지 계기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가 본 것은 a)와 b)의 일부분일 뿐이다. 헤겔은 칸트가 b)의 중요한 측면인, 모순을 통해 드러나는 부정적 이성의 측면을 그의 이율 배반론에서 제시했다는 점을 크게 인정하지만, b)를 c)의 적극적인 이성의 측면 아래에서 연계시켜 보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서 b)에 해당되는 변증법적 혹은 부정적-이성적 측면을 중심으로 하여 이것의 위상에 대해서 칸트와 헤겔의 입장을 대비시켜 살펴보기로 하자.

칸트철학도 경험론과 같이 경험을 인식의 유일한 토대로 삼되, 경험에 대한 인식은 단지 현상(Erscheinung)의 인식에 불과한 것이다. 경험에서 주어진 두 요소 즉 질료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 중 형식적인 것으로서의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사고규정을 칸트는 의식 일반의 범주(순수지성개념)으로 규정하고서, 이의 근거로서 자아의 근원적 동일성(즉 초월적(순수) 통각)을 제시한다. 즉 자아의 근원적 동일성이 범주의 사고규정의 성립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사고규정들의 내용이나, 규정들간의 특정한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를 그만 두고, 다만 이 사고규정을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았다고 비판하고, 범주를 이러한 초월적 통각의 자기관계의 형식으로 규정한 것이 결국 범주를 단순히 주관적인 종합적 활동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난한다. 헤겔에 있어서의 논리학이란 단순히 어떤 것의 증명과 필연성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특유한 내용까지도 증명하고 그 필연성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칸트에 있어서는 지각이 범주에 의하여 객관성을 획득하기는 하지만 이에서 형성된 모든 개념은 단순히 주관적 의식의 통일일 뿐이기 때문에, 이 개념은 소여의 소재에 제한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범주는 지각의 대상이 아닌 절대적인 것의 규정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그의 지성적 인식은 물자체(Ding an sich)를 인식할 수 없었다. 물자체란 대상에 관한 모든 인식, 모든 특정의 사유(Gedanke)를 추상하는 한에서의 대상, 즉 완전한 추상, 완전한 공허, 사고의 단적인 부정이다. 그렇지만 물자체라는 개념 그 자체는 또한 사고, 순수 추상의 경지에 도달한 사고, 즉 공허한 자아의 추상적 동일성이 대상으로 삼는 바의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순수 추상적 사고(즉 이성)의 능력의 일단을 칸트가 제시해 주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바로 거기에서 멈추어 버리고 이 사고의 절대적인 성격, 자립적인 성격을 보지 못함을 비판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사고로서의 이성에 대한 칸트의 입장과 헤겔의 입장을 비교해 보자.

칸트에 의하면, 이러한 경험적 인식의 피제약성을 통찰하는 것이 바로 무제약적인 것들에 대한 능력으로서의 이성(Vernunft)이다. 여기서 이성의 대상으로 불리는 것, 즉 무제약자,무한자들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Sich-selbst Gleiches), 사고에 있어서의 근원적 동일성(ursprungliche Identität der Ich in Denken)을 말한다. 이성이란 이렇게 자기자신과 순수하게 동일한 것을 대상이나 목적으로 삼는 추상적 사유(Gedanke) 혹은 추상적 자아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성의 진리한 절대적인 것이며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것이 된다. 칸트에 있어서 이러한 절대자에 대한 인식은, 이성이 지성의 범주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 달리 가능한 방도가 없다. 그러나 이처럼 지성의 범주를 경험을 초월하여 이성의 대상인 무제약자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가상(Schein)만을 창출할 뿐, 어떠한 참된 인식도 이루어 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칸트에 있어서의 이성의 변증적 사용인 것이며, 이는 따라서 비판되어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무제약자는 크게 영혼,세계,神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각각에 대하여 칸트와 헤겔의 입장을 비교해 보자. 이를 통해 우리는 각자가 형이상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 영혼에 대하여

최초의 무제약자는 바로 영혼이다.칸트는 이 영혼의 실체성의 주장에 대해서 이는 경험적 규정과 사고규정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매개념을 매개로 해서 추리함으로 해서 이루어진 잘못된 추리(즉 오류추리)라 본다. 그러나 헤겔은 사고규정이 경험규정보다 더 완전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경험적 규정을 통해 사고 규정을 근거지우려고 하는 칸트의 생각을 단적으로 거부한다. 헤겔에 있어서는 이성적인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것이다.

(2) 세계의 이율배반에 대하여

두번째의 무제약자인 세계를 인식함에 있어서 이성은, 동등한 필연성을 지니고 주장될 수 밖에 없는 두개의 상반되는 주장과 부딪치게 되는 이율배반에 빠진다. 칸트는 이런 이율배반적 모순이 인식하는 이성에서 비롯됨을 밝힘으로써 이성이 일으키는 불가피한 가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해결책을 거부한다. 이성적인 것이 지성규정들, 즉 범주를 통해 규정될 때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진다고 하는 생각을 칸트 철학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면서도 헤겔은 칸트가 이의 해결을 이성의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크게 반대한다. 모순이란 규정하고 규정되는 모든 사고에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다. 무규정적인 추상적 동일성으로서의 사고가 아닌 이상, 모든 사고는 모순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런점에서 헤겔은 칸트가 단지 범주표에 따라 네개의 대상에만 이율배반이 일어난다는 것을 비판하고서, 모든 종류의 모든 대상과 모든 표상, 개념, 이념에 대해서 이율배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든 개념들의 이율배반의 계기에 주목하는 것, 바로 이것이 논리적인 것의 두번째 측면인 변증법적 혹은 부정적-이성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길이다.

(3) 神에 대하여

세번째 이성의 대상은 神이다. 이성이 추구하는바 神이란 가장 실재적인 본질로서의 단적인 추상체로서의 <존재>와 <추상적 동일성>(즉 개념)이라는 두개의 통일을 말한다.

이러한 통일은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첫째, 존재로부터 추상적 동일성으로 진행하는 것이 그 하나요(우주론적,자연신학적 증명), 둘째, 추상적 동일성으로부터 존재에로 진행하는 방식이 또 하나이다.(존재론적 증명)

첫째로 존재로부터 개념에로의 이행이란 무한히 다양하게 규정된 직접적인 것으로 주어진 존재로부터 개별성과 우연성을 벗겨내고 보편적이고, 그 자체 필연적이며, 보편적인 목적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하는 활동적인 존재로서의 神을 도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칸트는, 아무리 지각이나 지각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살펴보아도, 사고를 통해 주어진 神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추리(Schlüssen;Beweisen)의 방식으로는 도출해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고양에서 이루어지는 神의 보편성은 그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헤겔은 존재의 경험적 표상으로부터, 추리에 의해, 神을 인식하고자 하는 칸트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서, 추리가 아니라 사고를 통해서만 본질과 실체가 주어진다고 하면서 사고를 인식의 기반으로 삼는다. 神의 존재증명이란 사고하는 정신 자체가 진행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적인 것을 넘어선 사고의 고양(Erheben), 무한한 것으로의 사고의 초월(Übergehen), 초감각적인 것으로의 비약(Sprung), 이 모든 것이 사고 자체이며 이러한 초월은 단지 사고일 뿐이다."

칸트가 기반으로 삼는 '추론'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출발과 끝에 일어나는 긍정적 계기만을 보존할 뿐이고, 따라서 존재에서 神으로의 비약이 지니는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지 못한다. 정신의 부정을 통한 초월은 이행과 매개인 동시에 이러한 이행과 매개의 지양(Aufheben)이기도 하다. 즉 매개 그 자체 속에서 매개가 지양된다. 사고의 이러한 비약과 초월을 제대로 사고할 때, 우리는 비로소 절대자로서의 神에 대한 완전한 사유(Gedanke)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사고의 출발점은 단순히 감각적인 세계나 생명있는 자연과 같은 저차원의 것에서 잡아서는 안되고 생명있는 활동적인 정신(Geist)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추상적 동일성(개념)으로부터 존재로 진행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여기서의 대립은 개념과 존재의 대립이다. 즉 존재라는 것은 개념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개념에서 분석되는 것도 아니다. 이를 칸트는 '백 탈러'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은 백 탈러와 神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神은 특수한 개념들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유한한 것들에게는 존재와 개념이 다르고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神이란 것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 될 수 밖에 없는 것, 즉 개념 속에 존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神이란 매개의 지양을 통해 산출된, 따라서 직접적인 자기 관계요, 존재란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정신의 가장 내적인 것, 개념, 자아, 구체적 전체로서의 神의 사고에 있어서의 가장 추상적인 규정이 바로 존재인 것이다. 존재란 사유(Gedanke)에 있어서는 내용상 가장 빈약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이러한 존재와 개념의 구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칸트에 있어서는, 모든 규정성은 사고에 단지 외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이성은 가장 추상적인 사고가 된다. 따라서 칸트에게 이성은 무한자에 대한 이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비판을 제공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 있어서도 이성의 사변적 성격(논리적인 것의 세번째 측면에 해당)의 일단이 보여지는 곳이 있는데, 바로 반성적 판단력에 대한 그의 철학이 그것이다. 반성적 판단력이란 지성적 직관의 원리로서, 보편에 대해 우연적인, 따라서 보편에서 나올 수 없는 특수(Besondern)가 이 원리에 의해 보편에 의해 규정된다. 여기에서 이념(Idee)의 표상, 아니 이념의 사유(Gedanke)가 분명히 말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보편과 특수가 통일 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러한 이념이, <자연 또는 필연성>과 <자유라고하는 목적>의 요청된 조화 속이나, (필연적인) 세계에 실현되었다고 생각된 궁극목적으로서의 사유(Gedanke) 속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보편과 특수의 통일로서의 이념을 제시하지만, 그 자체로서 규정하고 규정되는 보편자로서의 목적에 대해서 단순히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그리고 표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궁극목적으로서의 善이 단순히 주관적인 것, 있어야 할 것(sollen)으로 규정될 뿐이다. 이는 곧 현상만이 인식될 수 있다고 하는 비판철학의 귀결에서 나온 것이라 하겟다. 이에 대해 헤겔은 칸트의 이러한 이원론적인 체계를 비판하면서, 지성적 인식의 한계를 말하는 것 자체가 곧 지성을 초월해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여 칸트 철학이 지닌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즉 유한한 것, 또는 제한적인 것이라는 말 자체가 무한한 것, 무제한적인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칸트 철학은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칸트 철학은 자신의 정당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 경험론과 비판 철학의 특징

이상에서 살펴본 객관성에 대한 두번째 입장으로서의 경험론과 비판 철학은 모두 실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며, 보편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봄으로써, 주관과 객관, 특수와 보편, 존재와 사유(개념)를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헤겔에 있어서는 이러한 분리와 대립이란 사고의 자기 관계성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사고란 스스스를 스스로와 연관시키는 비약이며, 그리하여 사고와 존재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세번째 입장 : 직접지(Das Unmittelbare Wissen)

칸트에서 파악된 보편적 활동으로서의 사고(선험적 통각)란 모든 규정성이 배제된 단순히 추상적 보편, 형식적 동일성에 불과할 뿐이며, 또 이와 반대로 특수자의 활동으로서의 사고의 산물로서의 범주를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범주는 제한된 규정이며,제약된 것,의존적인 것, 매개된 것의 형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범주의 한정된 사유(Gedanke)로는 무한한 것 즉 참된 것으로 옮아 갈 수 없고, 끝없는 매개만이 되풀이 될 뿐이다. 따라서 매개지란 오직 유한한 내용에만 제약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神을 인식하는 이성이란 곧 직접지 또는 신앙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직접지의 입장이다.

이 입장은 단순히 매개지가 그것만으로는 진리를 아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지가 그것만으로, 즉 매개를 배제하고 진리를 내용으로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헤겔은 이러한 입장이 직접지와 매개지를 대립시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곧 논증할 수 없는 독단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즉 이 직접지의 대상으로는 모든 우상숭배의 대상들도, 또 모든 종류의 선악의 구별에 상관없는 대상들도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직접지에서는 神에 관해서도 神이 있음을 말할 뿐이지 神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神이 무엇인지는 매개지에 의하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접지에서는 보편적인 것에 대해서 추상성이라는 일면성을 부여할 뿐이고, 따라서 神은 무규정적인 존재로 된다. 헤겔은 그러나 神이 정신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자기자신 속에서 자기자신과 매개하는 자"로서 파악될 때 가능하다고 하고, 그래야만 神이 구체적이고 생명있는 정신이 된다고 주장한다. 정신으로서의 神에 대한 인식은 따라서 자기자신과의 매개를 포함한다.따라서 타자에 대한 매개이거나 자신 중에서 자신에 의한 매개이거나 간에 매개를 거치지 않은 지( Wissen)가 있다는 것은 거짓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III. 결 론

이상에서 우리는 객관성에 대한 사유(Gedanke)의 세가지 입장들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살펴 보았다. 이상의 작업은 모두 각 입장이 지닌 긍정적 요소를 보존하면서, 부정적 요소를 폐기하는 지양의 과정을 통해, 논리학의 작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출발하는가를 보여 주려는 작업이었다. 이는 곧 처음에 제시된 사고의 네가지 규정들을 종합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사고가 무엇인지를 보이는 작업이었고, 또한 논리적인 것이 형식상 가지고 있는 세가지 측면 즉 a)추상적 혹은 지성적인 것, b)변증법적 혹은 부정적-이성적인 것, c) 사변적 혹은 긍정적-이성적인 것의 각 측면들을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이란 스스로를 자기 자신속에서 자기자신과 매개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참된 것의 내용이 인식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타자와 매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과 매개시켜야 하고 또한 매개와 자기 자신과의 직접적 관계가 하나로 되어야 한다. 매개도 매개 자체속에서 지양되는 사고의 비약을 통해서만, 생동하는 구체적인 보편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바로 논리적인 것의 세가지 계기들을 빠짐없이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