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커졌어요 :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

- Hypertext '97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와서 -


하이퍼텍스트(Hypertext)란 말 그대로 텍스트에 '초월한다', '넘어선다'라는 의미를 지닌 '하이퍼'(Hyper)가 붙여진 말로,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링크'(link)라고 하는 초월의 날개를 단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 링크의 날개는 인쇄문명 하에서는 하늘로의 부상을 위한 공기의 저항을 얻지 못하여 백과사전류에서 '자세한 것은 ○○○ 참조' 같은 말로 겨우 목숨을 부지해왔었다. 그러던 링크가 그 날갯짓에 힘을 싣고 하이퍼텍스트의 본질적 특징인 멀티-리니어리티(Multi-Linearity)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은 컴퓨터와 네트웍의 발전 때문이었다. 컴퓨터는 링크된 두 텍스트를 한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연결시켜주었고 네트웍은 링크될 텍스트의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하이퍼텍스트 하면 인터넷을, 그리고 인터넷 하면 월드와이드웹(WWW)을 떠올리며, 일상 어법에서는 이를 동일시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 셋은 WWW을 매개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엄연히 다른 출생 배경과 과정을 가지고 있다.

오른쪽 도표에서 보듯이 비유하자면 WWW은 서로 별개로 성장해 온 하이퍼텍스트와 인터넷이 결합하여 나온 둘째 아들이다. 하이퍼텍스트는 1945년에 Vannevar Bush의 논문 "As we may think"에서 'Memex'(Memory Extender)란 이름으로 그 맹아가 보였다가 1965년에 Ted Nelson에 의해 그 이름이 만들어졌다. Nelson은 제나두(Xanadu) 시스템을 통해 하이퍼텍스트를 구현하고자 했는데 이 시스템의 기본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써오고 앞으로 써갈 모든 것들의 저장소'(Docuverse)로써 '모든 것들이 깊게 서로 얽혀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KMS, Guide, Hypercard 등의 여러 시스템들이 개발되어 하이퍼텍스트의 여러 가능성들을 시험해 왔다.

하이퍼텍스트와 짝을 이루어 WWW의 모태가 되었던 인터넷은 1969년 미 국방부 소속의 첨단 연구 지원 기관인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서 ARPAnet을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바로 여기서 인터넷 프로토콜(IP)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컴퓨터라 하면 방 하나를 독차지하는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비싼 장치였다. 떠도는 이야기로는 ARPAnet이 핵 공격에도 끄덕없이 국가 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한다. 타임지도 이런 설을 퍼트리는데 일조를 했는데, 실제로 ARPAnet을 만들때 ARPA의 책임자였던 Bob Taylor에 따르면, 당시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동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과학 실험실의 컴퓨터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구원들이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인터넷 프로토콜을 개발하는데 크게 일조를 한 Paul Baran 같은 이는 핵공격에도 파괴되지 않는 메시지 전달 수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는 했지만 어쨌든 자금을 지원한 ARPA의 기본 목적이 군사적인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1)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의 만남의 첫 결실은 고퍼(Gopher)였다. 고퍼는 위계적 메뉴구조에 링크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지 않고서 마우스 클릭만으로 원하는 자료를 찾고 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위계구조에만 링크를 활용하고 텍스트만 사용할 수 있어 카탈로그 기능으로써는 훌륭하지만 창조성, 유연성, 미적 스타일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한계로 남아있었다.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의 만남의 두 번째 결실은 1989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소립자물리학연구소(CERN)라는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일하던 Tim Berners-Lee가 World-Wide-Web이라 불리는 프로토콜을 개발한 것이다. 이 프로토콜은 1. 텍스트와 다른 문서로의 링크를 한 화면에 표시하도록 하며, 2. 그래픽, 오디오, 비디오를 포함하는 멀티미디어까지도 구현하는 진보를 이루었다. 자기가 탄생한 실험실 한 구석에서 컴퓨터 한 대에 의지해서 외롭게 목숨을 부지하던 이 프로토콜이 불과 8년이 지난 97년 1월 현재 호스트 수 1615만대에 1억 안팎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을 하게된 데는 1993년 1월에 미국의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가 이를 도입하고 모자익(Mosaic)과 넷스케이프(Netscape) 같은 손쉬운 브라우저가 개발된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사실상 WWW의 모든 성장은 1993년부터 불과 5년만에 이루어진 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보편적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Nelson이 제나두를 가지고 30여년간 노력해도 안되었던 일을 WWW는 불과 3-5년만에 근접하게 실현해 버린 것이다.

Hypertext '97 Conference는 WWW Conference와 같은 날짜에(4월 6일-11일) 진행되었다. 전자는 영국 사우스앰프턴에서 후자는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렸으며, 각각 8회와 6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각각 87년과 94년에 시작되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하이퍼텍스트 학술대회는 영화 '아이가 커졌어요'에 나오는 엄청나게 커져버린 아이와 같은 WWW을 앞에 두고 모종의 위기의식과 자기 반성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91년 하이퍼텍스트 학술대회에서 하나의 포스트로 전시되었던 WWW이 규모나 내용에서 십여 배나 큰 대회를 같은 날짜에 열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그런 반성이 없을 수 있겠는가? 두 학회가 열린 영국과 미국의 역사적 관계가 두 학회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거부할 수도 없다.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투항할 수도 없다. 온갖 기업적 상업적 지원을 받으면서 갈수록 기세 등등해지는 '월드와이드웹 커뮤니티'의 그늘 아래서 '하이퍼텍스트 커뮤니티'는 이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변명거리나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1회 하이퍼텍스트 학술대회의 대회장이었던 John Smith는 10년이 지난 오늘 개회사에서 한편으로 왕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왕이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The King is dead : long live the King). 길은 하나뿐이다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환골탈태(換骨奪胎). 하지만 어떻게?

WWW은 하이퍼텍스트의 한 종류일 뿐이다. WWW은 하이퍼텍스트의 다양한 가능성들 중 일부만을 구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으며 일방향의 일대일 링크만 가능하며 전체적인 조감도가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에 성공하여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사용자를 확보해가고 있다. 이에 비해 다른 많은 하이퍼텍스트 시스템들은 보다 개방적이고 확장가능하며, 보다 풍부한 구조를 가지는 등의 새로운 가능성 구현하고 있지만, WWW이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실험실에서 소수의 사용자들에 의해 하나의 플랫폼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바로 현재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볼것이냐이다. 파도타기에 적당한 최적의 해변을 찾기 위해 아직도 더 돌아다녀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해변은 찾았으니 어떻게 하면 이 파도를 잘 탈 수 있을지를 궁리해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해 지금의 WWW을 진정한 하이퍼텍스트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진정한 하이퍼텍스트의 출현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지금으로선 영화에서처럼 다시 커져버린 아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어떻게 하면 이왕에 커져버린 아이를 잘 타이르고 교육시켜서 인간 사회의 건강한 한 일원으로 만드느냐 인 것 같다. 맥킨토시나 OS/2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보다 더 훌륭한 운영체계임에도 불구하고 호환성의 이점 때문에 윈도우즈가 운영체계 시장을 거의 주도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하이퍼텍스트에서도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WWW이 그렇게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조금씩 고쳐나가도록 하는 수밖에.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손안에서 논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떤 기술이 어느날 목숨을 위험할 정도로 커져서 인간 앞에 나타난다. 인간은 허둥대며 뒤늦게 어떻게든 이를 타일러서 자기에게 봉사하도록 만들려고 애를 쓴다. 그렇지만 결과는 대개 기술이 인간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인간이 적응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이퍼텍스트는 WWW이라는 새로운 이기(利器)를 인간에게 던져주었다. 이 이기를 둘러싼 인간의 또 하나의 도전이 안에서(월드와이드웹 커뮤니티), 그리고 밖에서(하이퍼텍스트 커뮤니티)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WWW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 도전의 결과가 2000년대를 그리는 밑그림 중의 하나가 될 것은 분명하다. WWW이 2000년대에도 계속 WWW일지 아니면 다른 새로운 형태의 하이퍼텍스트일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

(1) Katie Hafner and Matthew Lyon, Where Wizards Stay Up Late : The Origin of the Internet, (New York: A Touchstone Book,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