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책 : 텍스트에서 하이퍼텍스트로

이글은 <교육마당21> 2000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내 홈페이지 주소는 'cogito.pe.kr'이다. '한국(kr)에서 개인용(pe)으로 만든 코기토(cogito)란 이름의 홈페이지'란 뜻이다. 이 주소 자체에 이미 국적이 나타나 있지만 사실 내 홈페이지를 이루는 파일들이 꼭 한국의 어느 컴퓨터 서버에 있을 필요는 없다. 나는 내 HTML 문서 파일들을 미국, 유럽, 중국 어느 국가 서버 컴퓨터에 저장해 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것만이 아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 홈페이지의 문서 파일들이 어느 한 서버에 모두 모여있을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실제 내 홈페이지가 그렇게 되어 있다. 공짜로 홈페이지 서비스를 해주는 여러 사이트로부터 골고루 저장 공간을 할당받아서 내용과 기능에 따라 다른 서버를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홈페이지의 주 출입구인 프런트페이지와 메뉴 그리고 개인적인 정보는 채널아이의 서버에, 강의에 필요한 각종 자료와 노트들은 네띠앙의 서버에, 각종 게시판이나 방명록, 그 외에 방문자의 참여를 위한 공간은 천리안의 서버에 관련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내 홈페이지의 각 항목들은 하이퍼텍스트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방문자들은 주의하지 않으면 이들 문서들이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방문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문서에서 다른 문서로 넘어가는데 있어 그 문서들이 같은 서버에 있는지 여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방문자에게는 파일들간의 물리적 근접성이 아니라 문서들간의 내용적 연관이나 연상의 궤적만이 중요할 뿐이다.

사실 그렇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서 우리가 보는 것은 '넷스케이프'나 '인터넷 익스플로러' 같은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보여지는 내용들이므로 그 이면의 정보 기술을 두고 변화니 혁신이니 떠드는 것은 지금 책읽기를 문제삼고 있는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보는 것은 책을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이 글쓰기 공간의 변화가 초래할 근본적인 글쓰기 양식의 변화이다. 돌에 정성들여 글을 새기던 시절에서 파피루스에 쓰는 시기로 넘어가면서 글자는 흘림체로 바뀌었으며 글은 종교적 색채를 떨어버리고 세속화되었다. 두루말이에서 책으로 바뀌면서 글의 기본 단위가 커지고 색인, 목차, 쪽수 등이 개발되었으며 글은 큰소리로 읽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속으로 읽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 손으로 베끼던 시대에서 인쇄기로 찍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정보량과 정보의 보급 속도가 급격하게 늘어났으며 그것이 다 알다시피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읽는 속도도 그렇다. 고대의 지식인들이 지금의 지식인들의 글 읽는 속도를 보면 혀를 내 두르리라. 이제 글을 쓰는 공간이 책에서 컴퓨터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종이에 구현되던 텍스트가 전자적인 공간에 구현되는 하이퍼텍스트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이 중세의 암흑을 깨치고 근세가 시작되는 시발점을 이루었듯이, 하이퍼텍스트가 현재와 미래를 가르는 큰 획이 되리라는 예감을 가지고 나는 이 글을 쓴다.

그렇다면 하이퍼텍스트가 책과 뭐가 그리 대단한 차이를 보이는가? 이제 우리는 '하이퍼텍스트' 하면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을 떠올린다. 사실 월드와이드웹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은 마치 기름에 불붙듯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을 대학교나 컴퓨터 관련 종사자들의 전유물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도구로 탈바꿈시켰다. 왜냐하면 월드와이드웹에서는 마우스 하나만 있으면 어디로든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키보드의 자판을 외울 필요도 없다. '링크'라고 부르는 '파란 줄그어진 글자'를 마우스로 클릭하기만 하면 바로 그와 관련된 다른 문서로 넘어간다. 이 얼마나 직관적 인터페이스인가!

이 직관의 밑바닥에는 하이퍼텍스트가 있다. 월드와이드웹의 문서가 기존의 문서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문서 내의 어느 부분을 클릭하면 바로 다른 문서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책장을 넘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책장은 위에서 아래로 한 페이지의 글을 다 읽었을 때 넘기는 것이다. 책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웹의 한 문서 안에는 다른 문서로의 넘어가는 다양한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어느 경로를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이처럼 다른 문서로의 다양한 경로를 마련해 놓은 텍스트, 이를 하이퍼텍스트라고 한다. 경제학에서 시장의 질서를 유지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처럼, 하이퍼텍스트에는 독자들을 여러 방향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셈이다. 이런 하이퍼텍스트에서는 각주가 본문보다 더 중요하다. 책에서는 각주를 읽은 후에는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하이퍼텍스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주 이외에 따로 본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주에서 각주로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슬이 존재할 뿐이다.

로버트 쿠버는 <뉴욕 타임즈>에 쓴 '책의 종말'이란 글에서 이러한 상황을 '선(線)의 횡포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이야기한다. "소설의 힘의 많은 부분은 선, 즉, 문장의 시작으로부터 마침표까지, 페이지의 꼭대기부터 맨 밑까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저자의 감독 하에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운동 속에 구현되어 있다. 물론 인쇄의 긴 역사 동안 이 선의 힘에 맞서기 위한 많은 전략들이 있어 왔다. ... 그 선의 횡포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 마침내 하이퍼텍스트의 도래와 함께 이제 정말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종이의 묶음인 책으로부터 컴퓨터라는 전자적인 공간에 펼쳐지는 하이퍼텍스트로의 이 이동이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우리의 관심사는 저변의 기술적 변화가 가져다 줄 글쓰기와 글읽기의 변화된 모습,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끈'의 위력이다. 앞에서 나는 잠깐 내 홈페이지를 소개했었다. 내 홈페이지 문서들의 실제 공간적 위치가 어디든 그 문서들은 내 홈페이지의 구조 내에서 일사불란하게 연결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마치 책의 전체 내용이 목차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서들에는 우리가 책과 비교해서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부분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이루는 구성 성분들이고, 둘째는 하이퍼텍스트 위에서 만들어지는 경로이며, 셋째는 하이퍼텍스트 문서의 불확정성이다.

제일 먼저 하이퍼텍스트 문서의 구성 성분부터 살펴보자. 하이퍼텍스트로 된 홈페이지들은 단순히 글자들의 나열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거기에는 글자뿐만 아니라 그림, 사진, 동영상까지도 어우러져 있다. 이는 하이퍼텍스트가 디지털 기술의 구현체인 컴퓨터에 기반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컴퓨터는 글자, 그림, 사진, 동영상 등을 모두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부호로 변환시켜 저장한다. 컴퓨터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모든 것들이 다 0과 1의 조합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이렇게 동질화된 정보들은 쉽게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글자, 사진, 동영상 등이 한 문서 내에 손쉽게 결합, 분리, 배열된다. 게다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이퍼텍스트를 이루는 구성 성분은 또 있다. 홈페이지에는 기본적으로 게시판, 방명록이 마련되어 있다. 그 외에도 독자의 참여를 가능케 하는 많은 입력 장치들이 제공된다. 심지어는 실시간 채팅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제 작자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게시판을 관리하고 답장을 게시하는 등 독자와 직접 대화를 나눌 방법을 찾고 고민해야 하며, 독자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공간에 참여하여야 한다.

둘째로 하이퍼텍스트에는 다양한 경로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의 문서에는 다른 문서로 넘어가는 다양한 통로가 열려있다. 또 그 통로는 안팎을 가리지도 않는다. 한 사이트 안의 문서와 밖의 문서로 이동하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른 사람이 쓴 다른 사이트의 문서라 하더라도 내 문서에서 연결되면 내 글의 한 부분으로 포섭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문서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경계 없이 맞물린 공동의 공간을 독자는 자기가 선택한 경로를 따라 항해한다. 따라서 똑같은 사이트를 돌아다녀도 독자는 자기만의 선택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최초의 상업적 하이퍼텍스트 소설인 마이클 조이스의 <오후>(1987)를 보면, 주인공인 피터가 사장과 점심을 먹는 장면은 다른 장면으로의 세 가지 경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사장의 아내를 생각하는 장면이고 둘째는 동료와의 정사를 생각하는 장면이고 셋째는 자기가 맡은 골치 아픈 업무를 생각하는 장면이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피터의 점심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된다. 모든 마디는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또 설령 모든 마디, 즉 모든 에피소드를 다 방문해 보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거기에는 새롭게 읽을 방법이 남아 있다. 예전과는 다른 경로를 선택해서 읽으면 그것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이퍼텍스트 문서는 인쇄된 책처럼 한번 찍혀 나오면 영영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언제나 미완(未完)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미완이다. 첫째, 쉽게 수정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완이다. 워드프로세서로 써서 파일로 저장 해놓은 글은 언제든지 다시 불러서 고치고 지우고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덧붙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글들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고치고 지우고 순서나 배치를 바꿀 수 있다. 둘째, 계속 성장을 한다는 점에서 미완이다. 인터넷 정보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추가된다. 홈페이지를 만든 사람들에 의해서도 수정, 추가, 갱신되고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함에 의해서도 내용이 늘어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딸꾹질이 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learn2.com이란 사이트에 가보라. 거기에는 딸꾹질을 멈추게 하는 비법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밖에 자질구레하게 알면 도움이 되는 생활의 지혜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새로운 지혜가 계속 추가됨으로써 그 사이트는 계속 성장한다. 게다가 그 곳을 방문했던 사람들도 자기들의 비법을 거기에 공개함으로써 생활의 지혜를 보탠다. 하이퍼텍스트는 완결되지 않은, 끝이 열려있는 책이다. 셋째, 다양한 경로가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이퍼텍스트는 미완이다. 매 페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독자는 많은 경로들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를 항상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선택의 궤적은 독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다에는 무한의 바닷길이 펼쳐져 있다. 누구든지 그 바닷길 위에 원하는 대로 배를 몰아갈 수 있다. 배가 지나가면 수면은 다시 언제 배가 지나갔냐는 듯 매끄럽게 펼쳐져 있다. 각자는 각자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바다 표면에 다른 길을 낼 수 있다. 게다가 그 경로는 이미 주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검색 엔진에 의한 정보 검색이 그 예이다. 하나의 키워드에 의해 전세계의 관련 문서들이 한 화면 위에 매번 새롭게 정리된다. 검색된 목록 중에서 독자는 원하는 곳을 선택해서 이동할 수 있다. 고정된 위치가 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킴으로써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정보, 이것이 하이퍼텍스트이다.

이상의 세 가지가 하이퍼텍스트의 주목할만한 특징들이다. 하이퍼텍스트가 책과 다른 점은 변화하고 성장하며 저자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하이퍼텍스트도 책이라 한다면 이제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는 곳'이다. 그것은 마당이다. 이러한 하이퍼텍스트는 지금까지의 책에 대한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책은 영구 불변의 표상이었다. 책은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역사를 초월해서 인류 모두에게 영원한 진리를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책은 세계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며 따라서 "1,2,3장", "서론, 본론, 결론" 등의 목차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인쇄기의 발명과 함께 생겨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되며, 또 한번 찍혀 나오면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인쇄된 책의 특성에 현혹되어 책에 대한 지금의 신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형적이고 순차적인 질서를 강요하고, 두꺼운 표지에 싸여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유기체로 취급되던 책은 이제 해체된다. 인쇄문화가 만들어 놓은 전통은 뒤집고 망가뜨려진다. 하이퍼텍스트는 이 해체된 책의 자리를 메꿀 새로운 글쓰기이다. '해체'를 넘어 하이퍼텍스트는 '창조'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하이퍼텍스트란 새로운 책에는 예전의 독자를 당황케 하는 다양한 가능성들과 길들이 펼쳐져 있다. 새롭게 설정되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신하는 마디들이 있다. 불후의 업적으로서의 책이 아닌 수정, 변화를 거듭하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불변의 것에의 의지'가 아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자기 극복의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