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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한 (http://cogito.pe.kr http://cogito.pe.kr)read: 2203  vote: 496  
Subject   종이가방

만나서 하나가 되는 일은 언제 밑구녕이 빠지게 될지, 언제 한쪽 손잡이가 끊어질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그렇다고 언제나 종족의 보존을 약속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도, 그도, 그 애도, 너도 나도 하나씩 들고 있는 종이가방의 졸리고 접힌 모가지를 보노라면 그 흔해 빠진만큼이나 흔하디 흔하게 건들거리는 命을 예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종이가 자신의 평면적 본성 위에 입체를 꿈꾸는 전개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종이는 자신의 명을 스스로 재촉한 셈이었다. 아가리가 생기면서 안팎이 생기고 안팎이 생기면서 허기가 생기고 허기는 뭐든지 제 뱃속으로 유혹하려는 블랙홀의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한순간 불타오르고 말 수컷의 교태를 본다. 종이가방 밑바닥의 풀칠은 한순간의 시선 이상의 무게를 허락하지 않는다. 물기없는 것들만이 살아남을 때 종이와 가방은 만나서 하나가 되었고 하나가 된 것이 한갖 노새가 되었든, 사자와 호랑이의 두 고귀한 핏줄을 하나로 합친 라이거가 되었든 일회용의 본성마져 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허기진 뱃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겉에 그리고 물기없는 이름들을 치장하는 현란한 문구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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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07.14 -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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