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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한 (http://cogito.pe.kr http://cogito.pe.kr)read: 1904  vote: 404  
Subject   不敬의 나날

이 不敬의 나날을 어찌해야 하나이까
회칠한 흰 벽에 짙은 그림자로 새로 피어난 맨드라미 하나가
자기를 만들어 준 하나 밖에 없는 가로등 노란 불빛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이까
나는 오늘 볼링장, 호프집, 노래방의 정규코스를 거친 후
289 종점을 출발, 신림사거리, 보라매 공원, 공군회관, 여의도 광장, 마포대교, 공덕동 로타리,
굴레방 다리를 거쳐서, 새벽 두 시,
마지막 종착지인 삼거리를 이루는 한 골목을 올라 가고 있나이다
삼거리는 현재 소방차들과 매큼한 연기의 잔해들로 어수선 하나이다
오르막이 계속되는 삼거리 왼쪽 골목 어디에선가에서 불이 났다고 하나이다
고개를 올려다 보게 되는 왼쪽은 애시당초 내 목적지가 아니었나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삼거리의 오른쪽 평평한 거리로 꺽어지나이다
그 끝에 집이 있나이다
漏電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하나이다
삼거리에는 불구경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연기처럼 자욱히 흘러나온
저마다 하나씩의 귓속말을 남이 들을세라 수건거리나이다
당신의 귓속말이 내게로도 조금 새어 나오는 듯 하나이다

당신은 내 눈 속에 있고
내 눈 속에는
한쪽으로만 치우친 나뭇가지들,
남보다 먼저 말없이 제 숨을 끊는 후박나무 이파리,
땅에 반쯤 묻힌 또 다른 눈동자들,
텅빈 지하철 플랫폼으로 점점 다가오는 미세한 울림,
이런 것들로만 가득하여
나무 밑둥을 타고 오르는 호수면 잔물결 무늬처럼
제자리 걸음으로 어지럽기만 하나이다.

아침이면 다시 삼거리의 내리막을 내려가고
저녁이면 다시 삼거리의 오르막을 오를 것이외다
삼거리에서는 언제나 둘 중의 한 길을 선택해야 하겠지요
세 길이 하나로 통하고 한 곳에서 세 길이 흘러나간 것임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내 눈 속 불탄 자리에서는 아직 자욱히 배인 불내가 가시지 않았나이다
모조리 불태우리라 작정했을때 섣불리 다시 시작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바입니다.
불도 不敬도 不敬의 敬畏도 모두 당신의 뜻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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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07.14 -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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