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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한 (http://cogito.pe.kr http://cogito.pe.kr)read: 15787  vote: 412  
Subject   다섯자

어느 수학자의 말을 원용하면
세상에 열두자 이하로 표현 못할 감정이 없지요
열두자 이하로 표현 못할 감정은 "열두자 이하로 표현 못할 감정"이라고 표현하면 되니까요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온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세상에 말로 표현 못할 것은 다섯자만으로도 표현이 되지요
"기가 막힌 것"
기가 막히니까 '아 이게 기가 막힌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열두자가 더이상 상투어가 아니더군요

세상 대부분의 일이 내 일이 아니고 넘의 일이란 건 정말 다행이지요
정말 다행이라는 느낌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몸뚱이를 위로할라치면
그럴때면 염치없이 부처님 말씀이 생각이 나지요 평소에는 잘 놀다가 그럴때만...
'세상에 내 일이란 없으며 모두가 넘의 일일뿐'이라고
참으로 지당허신 말씀이지요
이 기가 막힌 일도 모두가 넘의 일이라면 이렇게 기가 막히지도 않았겠지요

한바탕 퍼붓는 소나기에 목짧은 땅은 영락없이 홈빡 젖으며
서둘러 길 만드는 잔개울은 안스럽기만 한데
철없는 하늘은 말짱 그대로군요
청청한 햇살은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어깨를 따갑게 내리누르는 뙤약볕이 무심하기만 합니다
저 짙푸른 가을 나무들도 겨울이면 어김없이
넘인양 제 이파리를 남김없이 떨구어 버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축복인지요
처음인듯 그렇게 다시 매년 새봄을 시작하는 나무는
일찌기 그걸 알고 있었던 게지요
겨울엔 차라리 알몸이 덜 서럽다는 걸
그렇지 않은가요 부처님
세상에 표현 못할 것은 없지요
내 말을 막지 말아주세요
다섯자로는 도저히 충분하지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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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07.14 -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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