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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입던 셔츠를 입고
아버지가 입던 바지를 입고
아버지가 쓰던 밀집모자를 쓰고
아버지가 입던 옷들을 아버지가 끌던 리어카에 태우고
태운다.
5월, 햇살은 여름처럼 뜨겁고
붙은 불은 거침없이 살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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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파리는 추방되었고
지저귐 콘테스트를 통과한 새들은 이식되었다
상쾌하다
제주 중문 신라호텔의 봄은 어디보다 이르다
나뭇잎이 만드는 햇살의 얼룩
외로운 풀 한포기마저 허튼 법이 없다
발 없는 낯익은 그림자만이 유독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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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에겐 연필 하나만 있으면 되고, 철학자에겐 안락의자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안락의자’하면 떠오르는 물리학자가 있다. 스무 살부터 루게릭병을 앓아 ‘휠체어 위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스티븐 호킹(Steven Hawking)이다. 그가 최근 <위대한 설계>에서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 “창조주는 필요 없으며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를 창조했다”고 선언함으로써 주목을 끌고 있다.
사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하기 전부터 신의 죽음은 철학이나 인문학에서는 식상한 주제가 된 지 오래다. 데카르트가 이 세계를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로 구분하고, 자연 세계는 연장실체이며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라고 할 때 이미 신의 입김은 자연 세계에서 멀어졌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 사유의 원형, 즉 근대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듣는 신의 죽음에서 이채로운 것은 그 소리가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물리학자인 호킹 등 저명한 과학자들에게서 온다는 점이다. 신의 격리와 함께 시작된 과학이 이제 자신의 과학 이론으로 신의 죽음을 완성하겠다는 것일까?
호킹은 “신은 불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인문학자는 그렇게 말하는 그와 그의 발언 행위에 더 관심이 간다. 호킹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인간을 뺀 자연 세계를 탐구한다면, 인문학자들은 그러한 탐구에 종사하는 인간 호킹을 연구한다. 감당키 어려운 개인적 비극과 인간 지성의 위대함이 교차된다는 점에서, 몸은 평생 휠체어에 묶여 있으면서 마음은 우주를 단번에 횡단하는 대붕의 날개를 펄럭인다는 점에서 호킹처럼 흥미로운 인물도 없다. 그의 빛나는 재능과 상상력에 비춰볼 때 그가 우주의 운행을 설명하는 데는 신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하늘만 올려보다간 탈레스처럼 우물에 빠질 수도 있다. 하늘만 올려보던 눈이 자신의 몸과 삶을 내려다본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일까? 자신의 휠체어, 자신의 비범한 재능, 그 속에서 꾸려진 삶, 더 나아가 자신이 만든 광대한 우주는 어떻게 설명할까? 거기에도 신은 필요 없을까?
신의 죽음과 관련한 진짜 싸움터는 바로 여기다. 관조자로서 과학자 호킹이 우주를 향해 던지는 질문 속에는 절박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만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 한 인간 호킹이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 속에는 절박함이 있다. 이 절박함에 당신의 과학 법칙들이 무슨 대답을 주는가? 과학은 나와 무관한 것들에서는 온갖 법칙들을 생산해내지만, 정작 내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에는 많은 경우 아무 답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신의 부활로 돌아가는가? 글쎄! 꼭 그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길이다. 어려운 길은 둘 다 택하는 것이다. 더 어려운 길은 둘 다 버리는 것이다. 내 삶의 절박한 요구에 과학은 무능하다. 그렇지만 신 역시 무능하다. 과학은 적어도 신의 무능을 용인할 만큼은 유능하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가? 호킹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했다. 그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설명이 모자란 채로, 부족한 채로, 모른 채로. 그럴 때 신은 죽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해진다. 죽는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은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성신학보, 수정대, 20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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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배식한
Subject   아버지 옷을 태우다
아버지가 입던 셔츠를 입고
아버지가 입던 바지를 입고
아버지가 쓰던 밀집모자를 쓰고
아버지가 입던 옷들을 아버지가 끌던 리어카에 태우고
태운다.
5월, 햇살은 여름처럼 뜨겁고
붙은 불은 거침없이 살아오른다.

아버지가 입던, 마지막 단추 떨어진 셔츠를 입고
아버지가 입던 발목 짧은 바지를 입고
아버지가 입던 옷들을 아버지가 끌던 수레에 다시 태우고
태운다.
불길은 얼굴을 타고 모든 물기를 말리며 오르고
시커먼 연기는 불길을 탄듯, 불길에 태워진듯 오른다.

아버지가 입던 셔츠를 입고
아버지가 쓰던 밀집모자를 쓰고
아버지가 새로 산 빈 수레를 딸딸딸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
오른다.
셔츠 사이로 비져나온 뱃살을 훑은 바람은
빈 수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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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31 - 08:37
LAST UPDATE: 2012.11.29 -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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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Simple view날파리는 추방되었고 배식한 2011.01.20 1059
1Simple view신의 죽음, 인간의 삶 배식한 2010.11.10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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